2021.07.05 조선일보
▶ 기사 원문 링크 : 조선일보 오피니언 [밀레니얼 톡] 美 출판사 편집장이 한국 문학에 대해 물었다
최근 크노프 출판사의 편집장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1915년에 설립된 크노프는 100년이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곳으로, 특히 미국 내 권위 있는 문학 전문 출판사로 유명하다. 두 시간 남짓 이어진 토드 포트노비츠 크노프 편집장과의 대화를 통해 2021년 상반기 미국 출판 시장의 전반적인 흐름과 함께 미국 출판계에서 바라보는 한국 문학은 어떤 모습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현재 미국 문학계에선 젊은 여성 작가의 작품들이 각광을 받고 있어요.”
아무래도 오늘날 미국에서 문학 작품을 읽는 독자들의 대부분이 젊은 여성이라 자신들과 같은 성별, 비슷한 연령대의 작가가 쓴 작품들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갈수록 책을 읽는 사람들의 주요 연령대가 높아지고 있는 한국과는 다른 상황이라 놀라웠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와중에 코로나 시대에 문학을 읽고 문학서를 만드는 것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한국에서는 지금 종말 문학, 감염병을 소재로 한 소설이나 아포칼립스를 조명한 작품들이 각광받고 있어요. 미국 출판 시장은 어떤가요? 그리고 지금과 같은 코비드(코로나) 시대에 문학을 읽고 문학서를 만든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혹자에게는 지금과 같은 팬데믹 시대에 문학을 읽는다는 것이 한가로운 자들의 사치스러운 취미 정도로 여겨질 수도 있으니까요.”
“미국 출판 시장도 한국과 비슷해요. 아포칼립스 문학, 종말을 다룬 작품들이 많이 읽히고 있어요. 이런 책들을 통해 독자들이 세계라는 것을 더 큰 범주 안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오히려 지금과 같은 코비드 시대를 통해 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는 중이에요. 많은 사람이 지금과 같은 시기에 책을 통해서 현재와 미래를 성찰하고 있으니 아주 소중하지요.”
그러면서 그는 한국 문학에 경의를 표했다. “크노프는 한국 작가들과 그들의 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특히 한국의 젊은 여성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큽니다. 저 역시 SF, 판타지라는 장르 안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날카롭게 던지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 세계가 흥미로워 늘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요? 그럼 주목하고 있는 한국 작가들의 이름을 말해줄래요?”
“요즘은 정세랑, 김보영 등의 작가들에게 주목하고 있어요.”
그가 정확한 발음으로 또박또박 거론하는 한국 작가들의 이름을 통해 한국 작가들에 대한 그의 관심이 진심임을 알 수 있었다.
대화가 무르익어갈 즈음 그는 미국 내 K팝의 인기와 함께 한국 영화의 성공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국 영화가 미국 시장에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국계 미국 감독인 정이삭의 ‘미나리’라든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같은 작품들이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어요. 한국의 이러한 소프트파워가 미치는 영향력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로 더욱 뻗어 나갈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그건 자연히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될 거고요.”
윤고은 작가의 ‘밤의 여행자들’이 이달 영국 추리작가협회에서 주관하는 대거상을 받았다고 한다. 2016년 한강 작가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고 2018년 편혜영 작가가 ‘홀’로 셜리 잭슨상을 받은 지 3년 만에 이룬 쾌거다. 과연 크노프 편집장의 말대로 한국 문학에 대한 세계 시장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듯하다. 한국 영화가 미국에서 새로운 역사를 썼듯이 한국 문학 역시 미국 출판 시장을, 더 나아가 세계 시장을 뒤흔들 날을 고대해본다.
크노프 출판사는 그린북 에이전시와 활발한 거래를 주고받고 있는 미국의 대형 출판사입니다.
앞으로 크노프 출판사에서 출간될 한국 SF를 기대해봅니다. :)